채움씨앤아이 속 채우는 이야기

  • 몽골제국 칭기스칸의 참모 아율초재
  • 어느 가난한 농부와 이기적인 빵장수의 이야기
  • 붕어빵 아저씨의 이산한 계산
  • 식물을 풍성하게 키우는 방법
  • 현문현답
  • 짓다 우연히도 모두 짓다
  • 지하철 판매원의 마케팅
  • 티라레미수
  • 동전 한잎으로
  • 책 이라는 글자
  • 연필 일곱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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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을 풍성하게 키우는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잘라버리는 겁니다. 
가지를 잘라내면 바로 옆에 두세 개의 가지가 새로 나오고,
잎을 따주면 그 자리에 서너 개의 새순이 돋아납니다.
그리고 본래의줄기, 중심가지는 더 굵어집니다. 
위기를 느낀 식물이 생장에 더 힘을 쏟는 것이죠. 

과수원의 포도나무 사과나무도 그렇지요. 
크고 실한 과일을 얻기 위해 해마다 꼭 해야 하는 건 가지를 치고 순을 따주는 일입니다. 

때로는 슬픔이나 우울도 웃자랍니다. 
걷잡을 수 없이 분노가 가지를 뻗어나갑니다. 
웃자랐거나 불필요한 감정의 잔가지들을 쳐낼 줄 알아야 그 자리에 건강한 감정이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자주, 너무 무성합니다. 너무 연결돼 있기 때문이죠. 
관계에서도 가지치기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단순히 많은 수확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무의 모양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도 
가지치기는 필요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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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현답이 아니라 현문현답이 필요하다
먼저 말을 걸어온 상대의 질문에 최대한 길게 대답하며 상대가 대화를 이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예를 들어 직업을 묻는 질문에 “버스 기사입니다”라고 단답식으로 짧게 답한다면 상대는 
더 이상 어떤 말을 이어가야 할지 몰라 대화를 중단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성남에서 강남까지 운행하는 100번 버스 기사입니다. 
교통 체증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이 따르는 직업이죠”라고 답한다면, 상대는 ‘성남에서 강남까지’ ‘버스기사’ ‘교통 체증’ 같은 
단어들에서 대화로 이어갈 힌트를 얻게 된다.

이렇게 하면 상대가 대화에 이어갈 수 있는 소스를 제공함으로써 자칫 어색해질 수 있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편안한 분위기로 바뀌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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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도 모두 짓다라는 동사를 취합니다. 
삶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것들은 우연히도 모두 ‘짓다’라는 동사를 취합니다. 
밥을 짓고, 집을 짓고, 옷을 짓고.

사람이 세상에 나면 이름부터 짓지요. 그 이름을 부르며 짝을 짓고, 무리를 지어 살아갑니다. 
작심. 마음도 짓는 것이구요. 그 마음이 지어낸 일을 끝내는 걸 매듭짓는다고 표현하죠. 
그러고 보면 삶이란 매일매일 뭔가를 짓는 일의 연속입니다. 

불가에서는 업을 짓는다고 표현하죠.  인간은 또한 죄를 짓습니다.
죄를 짓기 때문에 그러나 삶은 아름답습니다.  

새들의 고단한 날개짓, 잊지 못할 누군가의 눈짓이나  서로에게 무엇인가가 되고 싶은 몸짓들. 
모르긴 해도 이 또한 ‘짓다’는 말에서 나왔을 것 같지요. 

작가들은 짓는 사람이기 때문에 작가입니다. 그들이 지은 이야기 때문에 우리는 때로 웃음 짓거나 때로 눈물 짓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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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아저씨의 마케팅
얼마 전에 모 방속국에서는 지하철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사람들의 삶을 방영한 적이 있었다
나는 평소 지하철을 애용하는지라 그 방송을 관심있게 보았다.
나도 몇번 물건을 산 적도 있었다, 그 물건중에는 금방 망가져서 버린 적도 있지만 현재까지 잘 사용하는 물건도 있다

지하철 판매도 특이한 마케팅전략이 판매와 이어지게 되므로 판매원의 멘트도 고객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다음은 어느 판매원에 대한 내용이다
어느 날인가 어떤 판매원이 가방을 들고 지하철을 탔다. 그 판매원은 가방을 내려놓고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판매원은 말문을 이렇게 열었다

자 여러분~ 안~녕하쉽니까
제가 이렇게 여러분 앞에 나선 이유는 가시는 걸음에 좋은 물건 하나 소개 드리고자 이렇게 나섰습니다. 물건 보여드리겠습니다 
자, 프라스틱 머리에 솔 달려 있습니다. 이게 무엇일까여 칫솔입니다.
이걸 뭐 할려고 가지고 나왔을까여? 팔려고 나왔쉽니다. 이제 좀 있으면 우리의 명절 설이 다가옵니다. 
그때 친척분들에게 하나씩 싸비쓰하시라고 한개에 이백원씩 다섯개 묶여 있습니다.
얼마일까여 네, 계산이 빠르시군여! 단돈 천원짜리 1장 천원입니다. 그럼 뒷면 돌려 보겠습니다. 영어 써있습니다. 
메이드 인 코리아, 이게 무슨 뜻일까여? 수출했다는 겁니다. 수출이 잘 될까여? 
망했쉽니다. 자, 그럼 여러분에게 한개씩 돌려보겠습니다.
나는 그 판매원의 멘트에서 솔깃해서 그 판매원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판매원은 칫솔을 승객들에게 돌렸다. 
승객들은 너무 황당해서 웃지도 않았다 
그 판매원은 칫솔을 다 돌리고 나서 다시 말을 했다
자, 여러분! 여기서 제가 몇 개나 팔 수 있을까여? 여러분도 궁금하시죠? 저도 궁금합니다. 잠시 후에 알려드리겠습니다.
나는 과연 칫솔이 몇 개나 팔렸는지 궁금했다. 그 판매원은 또 다시 말했다
자 여러분! 칫솔 네개 팔았습니다. 얼마 벌었을까요? 네개 팔아서 사천원 벌었쉽니다
제가 실망했을까여? 안했을까여? 예~ 쉴~망했쉽니다. 그렇다고 제가 여기서 포기 하겠쉽니까?
아닙니다. 다음 칸 갑니다. 건강하쉽쇼

그 판매원은 가방을 들고 유유히 다음 칸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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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디저트 케익 중에 티라미수라는 게 있지요.
어원을 따져보면 티라레 미 수 이렇게 세 단어가 합쳐진 말인데요.
티라레는 이탈리아어로 끌어올리다, 미는 나를, 
그리고 수는 위로란 뜻입니다.   

티라-미-수, 그러니까 나를 위로 끌어올린다, 
의역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뜻이라고 하지요. 
당분과 열량의 일시적 효과 때문이겠지만 
쳐진 기분까지 끌어올려주는 음식이라는 얘길 텐데요. 
몸뿐 아니라 마음과 영혼을 위로하는 그런 음식을 소울푸드라고 부르죠.   

신춘문예를 준비하느라 노량진 고시촌 생활을 했던 소설가 백영옥 씨에게 그건 천 원짜리 주먹밥이었다고 합니다. 
먼 독일땅 허수경 시인에겐 누군가가 차려준 밥상이라고 하는데요. 그런 음식이 여러분에게도 있겠지요.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지던 청춘의 시기가 있었습니다 육신이 아니라 영혼이 고프고 삶이 고픈 것이었죠. 
몇 겹씩 껴입어도 뼛속을 파고드는 한기가 있습니다. 어쩌면 몸보다 마음이 추운 것, 마음에 몸살이 오려고 할 때입니다. 
일찍 내린 어둠이 허기처럼 느껴지는 초겨울의 저녁. 그런 한기와 허기를 달래줄 소울푸드가 있으신가요. 
그게 티라미수 같은 사람이거나 혹은 소울북이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XX
동전한잎
마당 한쪽을 채우던 국화가 짙지 않은 서리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꽃지지 않은 몇 가지 끊어다 올려놓는다.
얼마되지 않은 꽃에서 나오는 은은한 향은 작은 방을 채우기에 넉넉하다.

옛이야기가 생각난다.
엽전 한잎씩을 학동들에게 나눠주며 훈장님이 그러셨다지. 이것으로 이방을 가득 채울 것을 사오렴
다들 고개를 갸우뚱
동전 한잎으로 어찌 이 방을 다 채우란 말씀인고?

지혜로운 아이 하나가 나섯다
초를 한 개 사왔다. 당연히 방안은 불빛으로 가득 찼다지…

산국 몇가지 병에 꽂으면서 드는 생각이다.
아무것도 없는 텅빈 방을 가득 채우는 이 보이지 않는 가을을
이 방에 잠드는 사람이 알아채주길 바라는 마음이 일어서이다.

말하지 않아도 듣고, 가지 않아도 오는, 그런 소소한 걸음들이 하루를 열고 닫음을
서리에 녹아내린 산국 앞에서 훔쳐내듯 들어올린다.
XX
책이라는 글자는 한글보다 한자로 쓸 때 더 어울립니다
한자로 이 한 글자를 써놓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상형문자로서의 책은 
글을 쓰기 위한 대나무 조각이나 나무판을 줄로 꿰놓은 모양이라고 하죠. 
또 한편으론, 신전의 입구인 문 문자를 
간략하게 표현한 거라고도 하는데요. 
그러니까 책은 다른 세계,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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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라는 한자는 또한 
멀 경 두 글자가 엮여있는 모양입니다.
멀고 먼 것들이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만납니다. 
이곳과 저곳, 먼 존재들을 연결하는 끈...
그게 바로 책이 아닐까요?

당신과 나, 우리는 이렇게 서로 멀리 있습니다. 
하지만 나와 당신, 우리는 이렇게 가까이 있습니다. 
우리 사이에 책이 있기 때문이지요.
XX
연필 일곱 자루가 있는 아침
헤밍웨이의 얘긴데요. 
여행을 다니고 폭음을 하더라도 
그는 매일 아침 8시면 책상에 앉아 글을 썼구요.
HB연필 일곱 자루가 뭉툭해질 만큼 만족스런 날은 
연필 일곱 자루가 있는 아침’이라고 묘사했다고 합니다. 
평균 600개. 이건 소설가 이언 매큐언의 경우입니다. 
그는 매일 9시 30분에 일을 하러 나가서 평균 600단어를 쓰고 
운이 좋으면 1000단어까지 쓴다고 합니다. 
우리가 대가라고 부르는 작가들에게도 빈 종이는 두려움일 겁니다. 
천재라고 불린 예술가들에게도 특별한 영감이나 뮤즈는 없었다고 하죠. 
그것이 평범한 우리에게 묘한 위안을 줍니다. 
영화 ‘쿵푸팬더’에서 쿵푸의 진정한 비법을 알려준다는 용문서는 
그냥 빈 두루마리였습니다. 
거기 비친 건 다름 아닌 비법을 찾던 포의 얼굴이었죠. 
다시 빈 페이지 앞에 마주한 우리에게도